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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기초탄탄 하심당 1학기 에세이 후기

2024.05.02   조회수 159회    조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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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공부란 내 사전의 단어들을 정의해 가는 일이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새로운 언어로 다시 정립하는 것이다. ‘나는 왜 공부하는가’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내가 알던 백수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공부란 내 삶에서 만나는 단어들을 재정립하는 일이라는 생각에도 이르렀다. 글을 쓰면서 내게 떠오른 화두는 백수였고 백수라는 말이 익숙하면서도 생소하게 여겨졌다. 나는 단어를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상식적으로 알려진 의미부터 정리한 뒤에 내가 알게 된 것과 어떻게 다른지 썼다. 피드백을 듣고 나서 ‘다들 아는 의미니까 글에는 쓰지 말아야 하는 걸까?’하는 복잡한 심정이 되었지만 역시 내가 표현하려던 것이 글에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단어들은 대부분 이분법으로 분류되어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한다. 내가 백수는 나쁜 것이라 여겨왔던 것처럼. 백수와 무능을 같은 것으로 여기고 모두 나쁜 것으로 여겼던 마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글에 충분히 드러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무능하지 않다면 유능한 것인가? 무능이 싫다면 유능하고자 하는 것인가? 그것은 지나치게 이분법에 충실한 생각이 아닐까? 유능한 백수가 되겠다기보다는 무능하지 않은 백수가 되려는 것이고 그것은 분류에 들어가지 않는 잔재가 되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백수 아니면 노예인 삶에서 벗어나 그 사이 어떤 것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헤테로토피아를 만드는 일일 수도 있고 백수는 나쁜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이제 막 벗어난 어떤 순진한 인간의 덧없는 한 걸음일 수도 있다.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공부는 이분법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그것은 ‘무조건 나쁜 것’ 또는 ‘무턱대고 좋은 것’이라고 여겨왔던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이다. 굳어진 생각들의 뿌리를 찾다보면 내 무의식 속에 작용하는 권력이나 나를 억압하는 내 안의 ‘시선’을 볼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이 작동하는 내부를 찬찬히 들여다봄으로써 이분법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것은 제도의 분류 안에 머물기를 거부하며 스스로 잔재가 되고 헤테로토피아를 찾아가는 길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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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사람님의 댓글

지나가는 사람 작성일

스스로 잔재가 된다! 내내 생각해보고 싶은 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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