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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기초탄탄 <에세이> 서른 살의 해방일기

2024.04.28   조회수 51회    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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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한4경 라이프 기록


새벽 5시. 기상 시간. 이부자리를 가지런히 정리한다. 양치질하고 머리도 빗었다. 커피포트에 물을 올린다. 팔팔 끓은 물 위에 차가운 물을 부은 ‘음양탕’ 한 컵을 들이켠다.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동네 한 바퀴’ 러닝까지 완료.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고 나니 7시. 지금 출발하면 8시 기차를 무사히 탈 수 있다.
 서울시 중구 필동 남산자락에 있는 감이당과 하심당. 서울인 듯 서울 아닌 서울 같은 이곳은 한때 ‘낭만의 거리’로 유명했던 충무로역에 인접해 있다. 화, 수, 목 주 3일을 감이당과 하심당, 청년 학사 베어하우스에 머무르며 읽고 쓰기는 물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유쾌! 상쾌! 통쾌한 나날을 보내는 것이 나의 주 업무(?)다.
 일주일에 3일은 한양에서, 4일은 경상도에서 보내는 일상. 이렇게 오다가다 한 지 벌써 석 달이 넘어간다. 이곳에서 난 ‘하심당 청년’으로 불린다. 함께 공부하는 학우들은 모두 나보다 연배가 많은 중장년의 인생 선배님들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인생에서 큰 화두를 가지고 모였다. 몸이 아파서, 마음이 답답해서, 죽음을 사유하기 위해서, 나를 아끼고 사랑해서.
 나도 깨닫고 싶었다. 삶에서 무엇을 추구하고 어떻게 나를 지키고 살아야 하는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러한 물음에서 나의 공부는 시작되었다.

귀한 엄친딸, 거지 난민이 되기까지
 난 응애~ 하고 눈 떠보니 스위트 홈이 짠~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고급 아파트, 화려한 샹들리에, 고풍 엔틱 가구들 속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눈을 떴다. 피아노, 미술, 성악, 프뢰벨, 무용 등등 하루 스케줄이 빼곡한 일명 "엄친딸"로 자랐다.
 귀하게만 쑥쑥 자란 지 10년. 집안에 재난이 닥쳤고 동시에 전쟁이 시작됐다. 아빠는 알코올중독, 도박, 노름, 유흥, 폭행과 폭언, 구타, 협박, 갈취 등의 행동을 일삼으며 이중인격자로 전락했다. TV 아침 프로에 나오는 이들이 회고하듯 하루아침에 빤질빤질 아파트에서 허름한 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몰락 그 자체였다.
 "여기는 거지 골목이니까 숨 쉬지 말고 뛰어!"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거지 골목 한중간, 저 황토색 대문이 우리집이라고 난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밤,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눈물을 먹었다.
 바퀴벌레와 쥐가 득실거리는 습기 그윽한 단칸방에 4가족이 살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구더기가 바글바글한 푸세식 화장실쯤, 가스버너에 물을 데워 주방 세면대에서 씻는 것쯤, 한창 사춘기에 오빠와 한방을 쓰는 것쯤은 별 일도 아니었다. 제발, 단 하루만 두 다리 ‘쭉’ 뻗고 잠 한 번 ‘푹’ 자보고 싶었다. 나의 소박하고 간절한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빠의 술주정이 끝날 때까지 새벽마다 집을 빠져나와 모텔로, 찜질방으로 도망 다녔다. 한마디로 ‘날마다 전쟁’이었다.

전문직 커리어우먼의 불청객, 번아웃
 훌쩍훌쩍 조마조마 10년. 용케도 시간은 흘렀고 스무 살이 되었다. 대학을 입학하면서 드디어 집을 떠났다. 밀도 높은 대학 생활을 보냈고 4학년인 스물세 살, 공부 머리 없는 내가 전문직 라이센스 시험에 도전했다. 돈도 벌어야지, 와중에 엄마·아빠 싸움도 말려야지, 빨리 합격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피고 지고 피고 지고 32개월. 길고 긴 여정 끝에 마침내 합격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첫 직장 생활이 나를 너무 답답하게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일을 꾸역꾸역하고, 결코 끝나지 않는 일들의 목록을 지워가며 하루 업무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이 모든 것이 다 내가 원하는 일이었고 잘 해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바라던 직업을 가졌고, 가난했던 시절보다 조금 나은 생활도 하게 되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구애받지 않고 살고 있지만 어딘가 공허했다. 이 삶은 결코 내가 소망했던 '좋은' 삶은 아니었다. 지식은 생계를 꾸리도록 도왔다. 하지만 내 삶은 없었다.
 서서히 몸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시력이 급격하게 나빠졌고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기분이 들었다. 가슴에 돌덩이가 앉아 있는 듯한, 무엇인가 나를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내 몸은 버티질 못했다. 내 나이 스물아홉. 또 한 번의 지진이 찾아왔다. 근무 중에 숨이 턱 하고 막히더니 앞이 보이지 않으면서 위경련으로 정신을 잃었다. 건강을 돌보기로 마음먹고 직장생활을 정리했다.

서른, 속박에서 자유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20대를 보내고 서른 살을 맞이했다. 이런 비밀스러운 생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허심탄회하게 내 고민을 들어주고 현명한 조언을 해 주는 사람, 믿고 의지할 만한 어른이 필요했다. 길을 나설 때 방법보다는 방향이 먼저라고 생각했고 그 나침반은 감이당을 가리켰다.
 본격적인 어른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지혜를 구하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것 같다. 기존의 관계에서 ‘타임아웃’을, 노동에서 ‘턴 오프’를, 익숙한 공간에서 ‘뉴 플레이스’로. 지금은 나를 위한 양육의 시간이다. 나를 치유하고 재생하기 위해 내면으로 물러서는 시간인 셈이다. 방향을 틀어보니 이전에 꿈도 꾸지 못했던 선택과 가능성이 내 눈앞에 놓여있다.
 하지만 때로 흔들린다. 그래서 다짐한다. 삶의 의미를 찾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누군가 내가 겪는 걸 이미 겪었고 또 누군가 겪게 될 일이라고. 해서 용기를 내야 한다. 다르게 사유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다른 이들에게 ‘길’을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이걸 하려면? 내가 왜 그렇게 경직되고 두려워하는지 먼저 알아내야 한다. 무엇이 나를 엄격하게 하는지, 이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주 깊고 깊은 수준에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나의 해방을 위한 과제가 될 것이다.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동료들도 이 공부가 스펙이 되지도 않는데 도대체 뭐 하고 있느냐고, 어떻게 살아갈 거냐고 묻는다. 그러면 잘 모르겠어요,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보려고요, 길이 생길 거라며 말끝을 흐린다. 원래 세상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게 되었으므로.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는 것. 이게 나의 계획이고 목표다.

 나는 왜 공부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길었다. 비록 지금은 방황하고 있지만 이 방황은 내가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지, ‘쓸모없음’이 아니다. 나에게 당면한 상황과 부딪쳐 싸울 힘을 얻기 위해 하나씩 차근히 배워가는 중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책과 친구, 스승의 도움 없이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나중에, 정말 나중에 이렇게 기억하고 싶다. “생의 풍파에 휘청했던 때 다시 힘을 내서 살아가도록 보듬어준 공부”였다고. 어느새 목요일. 이렇게 3일 나의 한양 일정이 끝난다. -끝-

2024 하심당 목요 기초탄탄 스쿨 / 2024.04.25 (1학기) / 3조 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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