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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정신의학의 권력]진실이 문제가 아니라면

2024.07.18   조회수 1,155회    하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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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이 문제가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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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수 민 (목요 기초 탄탄 스쿨)

점심 남산 산책길에서 비혼이냐고 나영샘이 물었다. 결혼은 왜 안하느냐, 연애라도 해야지 라는 말들을 참 많이도 들었는데 이전처럼 불편한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유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발견에 에세이 주제로 정했다. 그렇게 결혼비혼의 구도를 생각하며 먼저 질문했던 이들의 책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10대엔 친구가 제일 좋았고, 20대엔 늦은 공부가 재밌었다. 30대 시작한 일은 재미도 있었지만 늦게 시작한 만큼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우정, 공부, 일 주요관심사에 집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연애와 사랑은 후 순위로 밀려났다. 큰 흐름은 맞지만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유는 따로 있었고 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자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사담이 될 것 같다는 이유로 얼른 주제를 바꾸었다. 하지만 급하게 변경한 개요는 명확하지 않았고, 영선샘의 번개 같은 진실이야기에 다시 소환되었다.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는 세상에서 제일 자신 없고 어려운 게 사랑이고 연애라는 사실이었다. 간혹 솔직하게 드러내면 멀쩡하게 생겨서는라고 돌아오는 말이 마치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연애도 능력인 분위기에 많지 않은 경험이 부끄러웠고 그런 자리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매번 봄이 오면 할 거야얼버무렸다.

보편적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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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는 학력 인플레이션, 해외여행 등의 세례를 받으며 개인주의의 도래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자유주의 1세대 (비혼 1세대의 탄생, 홍제희, 행성B) 그리고“90년대는 여성의 목소리와 글쓰기가 시대를 풍미한 페미니즘의 전성기(곰샘) 라고 말하는 이 시대의 변화가 궁금했다.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는 X세대의 시기이기도 한 90년대는 88올림픽 성공적 개최이후 독재시대 종식과 동시에 경제성장을 이룬 시기였다. 동시에 인터넷 보급으로 신자유주의 흐름을 더 빠르게 받아들인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청년기를 보내서일까? 외환위기로 금 모으기 운동에 따라간 기억은 있지만 국가나 가족이 염려되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와 배낭여행을 가기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여행 후에는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싶다는 열망을 키워갔다. 

그 바탕에는 한국전쟁 이후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50년대 생 엄마의 바램이 담겨있었다. 어린 동생을 업고 10리길을 가야만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던 시골소녀에게 결혼은 유일한 독립의 길이었다. 그래서 당신의 삶과 다르게 여성임에도 자립하여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지원으로 이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엄마 말 잘 듣는 착한 딸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서로의 욕망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렇게 두려움 없이 원하는 꿈과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자연스럽게 연애와 사랑은 우선순위에서 멀어졌다. 물론 그 사이 여러 번의 데이트와 만남은 있었지만 그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내가 원하는 지점에 도착하면 자연스럽게 사랑도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당시는 너무도 당연한 전제였다. 

하지만 청춘의 힘과 열정은 생산력의 원동력이자 토대에 해당한다.”(호모 에로스, 고미숙, 그린비, 98)는 말처럼 한 방향으로 설정된 열정은 국가 생산력을 위한 내면화된 규율일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동시대의 흐름을 따르는 보편적 전제는 수영샘이 수업시간에 말씀 하신 동일한 조건에 동일한 과정을 거치면 동일한 값이 나오는 증명 가능한 하늘 같은 진실의 시간들 이었다.

전제의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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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믿음과 다르게 사랑은 준비가 되었을 찾아오는 게 아니었다. 새로운 회사로 막 옮긴 상황이었고 얼른 배워서 자리를 잡아야 하던 시기였다. 우리는 입사동기였다. 처음에 그는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일 잘하는 그저 바른 동료였다. 하지만 야근에 주말까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스며들었을까? 좋아하지 않는 담배냄새도 좋게 느껴졌고 본적도 없는 그의 첫사랑을 질투하고 있었다. 고백 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한 공간에서 계속 봐야하는 이후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느닷없이 찾아와 자신을 변하게 만든 번개 같은 진실의 순간 이었다.

무슨 자신감인지 같은 마음이라 믿었고 고백과 동시에 연애가 시작될 것이라고 믿었다. 결과는 거절이었다. 마음을 접어야 했지만 이미 커진 마음을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 없었다. 포기하지 않은 여러 번의 고백과 거절 끝에 마침내 시작되는 듯 했다. 그런데 기대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상대의 말 한마디, 행동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갔고 어떻게 할지 몰라 허둥거리고 있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어져 후회한 순간도 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오히려 연애서적들을 보며 그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아무 소용없이 얼마가지 않아 관계는 정리되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방적 차단이었다자신의 부족함 때문은 아닐까 자의식에 시달리며 혼자 애끊고 있을 때, 다행이(?)그의 이직으로 자연스럽게 정리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자 느껴지는 편안함이란. 그 역시 안도하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고백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잘 맞는 동료로 지내고 있겠지만, 사랑에 울고 웃는 친구들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선물과도 같은 세계의 확장과 동시에 때가되면 찾아오는’, ‘운명 같은’, ‘아름다운이라는 모든 전제를 깨트리고 짧지만 강렬했던 일방적 사랑은 종료되었다.

절대적 진실은?

같은 마음으로 제대로 겪었다면 사랑의 화신으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반대로 속도와 온도가 달랐던 마음은 하늘 같은 진실번개 같은 진실에서 파생된 것처럼균열이 간 전제에 두 마음이 동시에 통한다는 것이 기적과도 같은 일이구나라는 새로운 전제를 더했다. 여러 번의 거절은 또 거절당하면 어떡하지하는 두려움을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감정이란 게 참 모순적이다. 두렵지만 봄이 올 때면 여전히 인연을 기다린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나는 솔로와 같은 프로그램을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렇게까지 하면서 짝을 찾아야 하나 의문을 가지면서도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그들을 부러워하면서 말이다연애도 시대에 의해 발명된 것이라고 샘은 말씀 하셨지만 나라고 별수 있을까. 다만 자신이 믿고 있는 전제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며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스스로 만든 것은 자신만이 깰 수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

글쓰기를 하고 있는 기간은 마치 모든 순간이 에세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마무리를 남겨둔 저녁. 마침 요가 샘이 비 오는 한강 흙탕물을 비유하며 때론 애쓰지 말고 순리에 따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신다. 그래 혼자 끌어안고 있던 흑역사를 이야기로 흘러가게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불현듯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아픈 기억이 아니라 처음의 망설임. 샘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염려한 나의 마음을 먼저 봤어야 했다. ‘멀쩡하게 생겨서는말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봤어야 했다. 퇴사이후 타인의 시선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지 않았을까 기대했는데 여전히 남아있는 자의식이라니. 부끄럽지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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