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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정신의학의 권력]규율권력의 사회

2024.07.18   조회수 140회    하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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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율권력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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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혜 숙 (목요 기초탄탄 스쿨)         

나는 올해 3월부터 6월까지 퇴직했던 청소년쉼터에서 일하게 되었다. 직장동료의 사고로 공백을 빠르게 대체할 사람이 필요해서 단기간 근무를 했다. 이때는 예전 직책과 업무가 다른 일을 하게 되는데 야간생활지도사로 오후 늦게 출근해 다음 날 오전에 퇴근하는 일과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시처럼 사람이 온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란 걸 체감하는 곳이다.

가정 밖 청소년이 들어오면 부모나 양육자, 행정기관, 병원, 학교, 경찰, 유관 기관과의 소통은 필수다. 청소년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부모와 갈등 또는 학대가 많다. 학대의 경우는 경찰, 행정기관, 학교와 소통을 한다. 청소년 보호는 기본 값이고, 한 청소년의 삶에서 풀어야 할 숙제를 쉼터에 거주하는 동안 풀어간다. 이것을 사회복지에서는 사례관리라고 한다. 쉼터를 중심으로 연결된 기관을 주욱 나열하니 푸코가 말하는 근대 규율권력을 상징하는 곳을 집합시켜 놓은 것 같다.

퇴직 전에 일했을 때는 조직의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든다고 살짝 자긍심을 가졌다. 그런데 정신의학의 권력을 공부하면서 인식하게 된 청소년쉼터는 다양한 규율장치의 근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여겼다. 뭔가 불편한 것도 있었지만 그 정도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살아가면서 규율은 필요하지만 규율이 권력으로서 개인을 주체화하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나도 우리 기관도 규율권력의 중계지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롭게 인식하게 된 개념을 통해 이 곳에서는 어떻게 규율권력이 작동되는지 살펴보고 싶다.

규율권력의 포획

푸코는 주권권력과 대비되는 규율권력이 정신의학의 계열에서 생겨났다고 보았다. 이 권력은 역사적 과정을 통해 착종되고 지난한 과정이 있었지만 현대 인간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규율권력은 생산물이나 시간의 일부나 어떤 범주의 용역 등의 징발을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신체, 몸짓, 시간, 품행을 총체적으로 포획한다는 사실 혹은 적어도 그런 남김 없는 포획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신의학의 권력미셸 푸코, 오트르망 (심재광,전혜리) 옮김, 난장, 80) 

3월에 다시 출근 하면서 청소년들의 생활을 공유하는 일지가 여전히 기록되고 있어서 (부끄럽게도)흐뭇했다. 클라우드에 올리면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동시접속해서 기록하는 것이 잘 활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글로 써진 CCTV라고나 할까. 이것은 개인의 신체, 몸짓, 시간, 품행을 기록한다. 청소년들이 등교, 알바, 학원가는 시간과 들어오는 시간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날의 특이사항을 기록한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한 아이에 대한 기록이 한 장을 넘길 때도 있다. 

또한 이 기록은 정부시스템에 기록을 남기는 기초가 된다. 중앙시스템에는 청소년이 입, 퇴소와 연령, 지역, 입소기간, 가출횟수, 가족사항, 가출원인 등 생각보다 많은 사항이 기록된다. 지원서비스를 수량화하고, 상담 건수와 내용이 업로드 된다. 이렇게 모인 자료는 3년 마다 실시하는 전국평가에 반영되는 데이터가 된다. 게다가 사례관리는 한 청소년당 하나의 파일을 생성하여 입소부터 퇴소까지 중요한 사항이 기록된다. 환자의 병력이 기록되어 관리되는 것처럼 한 청소년을 조사하겠다고 달려들면 낱낱이 드러나는 일정한 기간의 삶의 기록이다. 문서기록의 시각에서 봤을 때 포획이란 말이 적절하다.

모든 문서는 그 업계에서 자주 사용하는 언어들이 있다. 문서기록은 지자체, , 정부로 전달되기 때문에 그 자체가 위계적이다. 위계적 연속체인 것이다. 나는 잘 기록되고,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기록 활동이 결국 나의 생각과 신체까지 포획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지를 쓸 때 관찰하는 마음으로 쓰는데 혹시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생각하게 된다. 이상하게 감시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시간 흐름을 중심으로 작성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루에 처음 나간 시간과 들어온 시간은 반드시 기록된다.

이렇게 나의 감각은 청소년의 시간에 집중하게 된다. 또 야간생활지도자로 위생, 취침, 등교지도와 같은 생활지도와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런 지도와 관련된 것이사전에 개입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아 차렸다. ‘남김 없는 포획이란 이런 경우일까? 만약에 이번에 다른 역할로 일하게 되었다면 이런 미시성을 덜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현장에서는 동료들이 쌓여가는 문서기록 때문에 아이들을 마주쳐야 할 시간에 컴퓨터를 들여다봐야 하는 상황이 있다. 이런 환경도 위계를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문서기록도 마감기간이 있어서 그 날짜가 다가오면 더욱 그렇다.

규율권력의 동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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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가 되면 심리학적인 것의 기능은 모든 규율체계의 담론인 동시에 이 규율체계의 관리가 됩니다. 이런 심리학적인 것의 기능은 규율체계 내부에서 개인을 개별화, 정상화, 예속화하는 모든 도식에 대한 담론이자 그것들의 실행이었던 것입니다. (같은 책 135)

쉼터에 들어오면 몇 가지 심리 척도검사를 한다. 그리고 다른 유관기관에서 연계된 청소년은 대부분 종합심리검사 결과 해석지를 받아 볼 수 있다. 종합심리검사는 종합이란 말이 의미하듯 지능검사, 다면적 인성검사(각종 정신증 척도가 포함), 자기보고식 설문 외에 푸코가 매우 흥미있게 검사받고 연구했다는 로르샤흐검사를 받기도 한다. 결과 해석에 따라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통해 약을 먹거나, 전문상담사와 상담을 진행하는 경우로 나뉜다. 이 검사 결과는 약을 먹지 않거나 상담을 하지 않아도 한 청소년을 바라보는 중요한 시선이 된다. 학교나 군대도 심리검사를 통해 정서적으로 관리해야 할 학생과 군인을 구분한다.

이번에 경험하면서 심리학적인 기능이 규율체계를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더 크게 느끼게 되었다. 푸코는 심리학적인 것의 기능이 정신의학 쪽에서 탄생했다고 보고 있다. 규율을 익히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심리학적인 것이 기능했다고 보는데 특히 약을 먹는 청소년들은 규율체계에서 지내려면 필요한 부분으로 여겨지고 있다. 규율을 익히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규율장치의 균열을 가져올 사건들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약 복용을 확인하는 것이 현장에서 요청받은 첫 번째 임무이기도 했다. 나는 어떤 변수(사건)도 만들고 싶지 않아 꼼꼼히 체크했다.

하지만 어느 날 평소에 예의도 바르고 약을 잘 챙겨먹던 17세 청소년이 샤프로 자신의 손목을 그은 사건이 생겼다. 그날은 주말이었고 한 청소년이 홍대에서 놀면서 귀소하지 않겠다고 전화로 나와 실랑이하는 상황이었다. 그 청소년이 그날따라 자주 안팎을 드나들어 신경이 쓰였으나 실랑이 했던 청소년 때문에 노심초사하던 상황이었다. 주말과 야간에는 혼자 근무한다. 그러던 중 잠시 외출한다고 해서 고개를 끄덕였는데 30분 후 경찰에게 전화가 왔다. 밖으로 나갔던 청소년이 근처에서 손목을 그어서 보호하고 있다는 거였다. 경찰 2명이 곧 손목을 그은 청소년과 들어왔다. 미성년자는 일정한 시간 보호자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실종신고를 하게 되어 있어서 마침 실종신고를 보고 받고 경찰관 2명이 또 오게 되었다. 그날 들어오지 않겠다고 한 청소년은 서울 경찰들이 찾아줘서 나는 인근에 하룻밤 머물 수 있는 쉼터로 실랑이했던 청소년을 연계하고, 자해한 청소년은 재발 가능성이 높아 경찰이 비상연락망을 통해 정신병원으로 긴급입원을 하게 되었다.

두 청소년은 약을 먹는다. 내가 먹으라고 얘기하지 않아도 시간에 맞춰 잘 먹었다. 또 일정하게 자살예방센터에서 상담을 받았다. 이 아이들을 중심으로 규율권력의 동위체적인 기관들이 이중, 삼중으로 둘러싸여 있는 게 보인다. 이 모든 시초가 되는 것이 심리학의 역할처럼 보인다. 심리검사는 점수를 통해 표준과 표준이상으로 나누면서 일정한 분포 안에 있는지를 보고 정상성을 규정하게 된다. 그것은 다음 스텝인 상담이나 약 먹는 것으로 예속되게 되고, 그런 담론에 지배받게 된다.

청소년 입소, 퇴소의 빈도가 늘어나니 문서기록도 쌓여간다. 다른 기관과 협업할 것도 많다. 그러니 서로가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심리검사와 자료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어느새 동료들의 책상에 DSM-5(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라는 두껍고 큰 책이 책상에서 책상으로 옮겨 다닌다. 정신의학이 질병코드를 확장시키고 개인의 기분까지 관리하는 것은 막강한 의약산업이 배후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친구가 사라지고 이웃이 사라지고 있는 사회에서 정신의학은 심리학적인 기능과 함께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나오며

쉼터에서 오랫동안 보호한 청소년들은 사회에 나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여기서 오랫동안 지냈던 청소년들이 거주지원을 받고 나가서 살게 되면 한동안 자유를 만끽한다. 정해진 시간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게 아마 큰 이유일 것이다. 담배는 허용하지만 시설 내에서 술 먹는 것은 금지이니 그것도 자유일 것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무기력해서 아무 것도 못하겠다는 소식이 들린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대학 가서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지금은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한다. 막상 대학에 가면 손과 발이 묶여있던 아이들이 손으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발로는 어디를 가야하는지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우리 주변을 조직했던 규율권력이 정상/비정상을 구분하고 비정상이 위험으로 규정되어 (위험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해야하는 것을 통찰했던 푸코는 어디까지 이 사회를 그렸던 것일까? 점점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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