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이 따로 없었다. 60세를 전후한 언니 2명, 49세 나 1명, 32세의 처자 1명이 왕언니를 피해 숨죽이고 메모를 하는 꼴이 배를 잡게 했다. 나도 메모 본능이 후끈 달아올라 철퍼덕 주저앉았다. 메모하다 수다 떨고, 수다 떨다 메모하고 소리가 높아지면 쉬쉬하면서 우리는 동지애를 맘껏 발휘했다. 역시 압박(?)은 동지애를 키운다. ㅎ
개콘에 조용필(必)이라는 코너가 있다. 고시생 선배와 후배가 함께 사는 생활을 소재로 삼는데 우리의 상황과 비슷하다. 고시에 집중하는 선배를 위해 후배는 소리를 자제한다. 조금만 소리가 나도 눈을 부릅뜨는 선배와 공존하는 눈물겨운 노력이 펼쳐진다. 그 코너를 보면서 뭐 저런 디테일까지 개그 소재가 되나 싶었는데 그 코너야 말로 우리의 상황이 아닌가.
당시 우리의 상황은 조용필 코너를 압도했다. 메모를 해야 하는데 되지 않고, 웃어야 하는데 웃지 못하는 상황. 폭풍수다의 압력을 조절하면서 조용히 떠드는 강도 높은 자제력. 갑자기 관찰력에 대한 질문이 폭발한다. 처음엔 고시원의 비애를 웃음으로 비트는 개그맨의 관찰력이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관찰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암은 친구들을 위해 여행기를 써야 했고, 개그맨은 새로운 코너를 만들어야 했고 우리도 여행기를 써야 하는, 그 절실함이 관찰력을 필요로 했다. 연암이 들으면 어이가 없겠지만, 내 머리 속에서 개그맨과 연암과 우리가 오묘하게 교차된다.
솔직히 메모도 메모지만 수다 본능이 솟구쳤다. 특히 해숙 언니 목소리는 계속 커졌다. 난 왕언니가 한 마디 할까봐 해숙 언니에게 “언니 조용히 해.”라고 찔러대면 해숙 언니는 온몸으로 조용함을 표현한다. 난 바닥이 차갑게 느껴지자 슬리퍼를 방석 삼아 쭈그리고 앉아서 메모한다. 피난민이 따로 없다. 쓰기 전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쓰니까 써지는 게 신통할 뿐이다. 관찰력이 없는 나는 ‘쓰기 위해’ 엉성한 관찰력을 기름 짜듯이 짜고 또 짜낸다. 만약 글쓰기가 없었다면 왕언니 뒷담화 뿐 아니라 소소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원한(?) 감정에 휩싸인 여행이 되지 않았을까. 여행에서 돌아와서 결별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아니 뒷담화조차도 글쓰기 재료가 되니 신이 났다. 오직 여행기를 써야 한다는 일념뿐! 그래서 난 좋은 여행 꿀팀을 말하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