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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기초탄탄 주권 권력의 가시화 체험 - 네번째 부인이 되어라

2024.07.12   조회수 213회    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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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왔니?"
 단골 카페의 그늘진 벽 쪽에 앉아 시샤, 물담배를 피고 있으면 여지 없이 들리는 아랍어 특유의 억양이 강한 영어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도 나는 내색 않고 수박향과 민트를 섞은 물담배 연기만 입에 머금고 있다가 후우~ 내뱉으며 그제서야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본다. 나이는 대략  40대 초반, 살집이 있고 금테 안경을 쓴 남자다. 쉬운 영어는 구사할 줄 아는 학식을 지닌 카이로의 중산층 유부남. 첫 번째 부인과는 조혼 관습이 있기에 아마 내 연배(그 당시 만22세)정도의 장자가 있을 것이었다. 그런 남자들은 히잡(이슬람교도 여자들이 머리에 쓰는 베일 종류 중 하나)을 쓰지 않은 어린 동양 여자가 남녀 모두 오는 카페에서 혼자 시샤를 피우면 꼭, 반드시라 할 정도로 물어 본다.
 "혼자 왔니?" "가족은 어디에 있어?"
 그러고는 아랍어로 혼잣말을 한다.
 '어린 여자애가 혼자 앉아 있어? 내 딸 같으면 다리를 부러뜨렸을 거다. 하지만 내 딸이 아니니 무슨 상관이야. 이번에 네 번째 부인과 이혼했으니 그 자리를 채워 줄까?'
 드문드문 들리는 아랍어 맥락을 파악하느라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면 있는 웨이터가 맹물처럼 보이는 유리잔에 담긴 저렴한 러시아산 보드카 한 잔을 내 앞에 놓아주며 서 있는 남자에게 살짝 속삭인다.
 "이 여자애, <알 아즈하르>에서 이슬람법 공부하고 있어."
 그러한 웨이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유부남은 발의 방향을 바꿔 다른 곳으로 느릿느릿 걸어가 버린다. 그 일을 반년 정도 반복하는 것이 그 즈음의 일상이었다. 집을 떠나 처음 유학이란 것을 왔지만 라면 이외에는 요리할 줄도 모르고 시장에서 장을 본 적도 없는 데다 파(scallion)과 릭(leek)도 구분할 줄도 모르는,  배가 고팠던 나는 이집트 정부가 배급하는 빵, 에이쉬와 이집트의 유명한 특산품인 오렌지로 연명하며 여섯 개의 두툼한 종이 사전 뒤적이기에 지쳐 머리가 터지려 하면(영어로 아랍어를 배우고 프랑스어로 상형 문자를 익히던 시기라서, 거기에 영한과 불한 사전까지) 자취방 앞 카페로 내려가고는 했었다. 시샤 한 모금과 오렌지 한 알 값의 보드카로 허기를 잊고 다시 하기 싫은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던 때였다. 물론 나는 무슬림, 이슬람교도가 아니어서 무슬림만 입학 가능한 <알 아즈하르> 대학생도 아니었고 이슬람법, 샤리아는 법전만 소장하고 있을 뿐인 어학 연수생이었지만 이 아랍 남자들에게 그 금제 효과는 빼어나서 여자 유학생과 인연이 있는(아! 당시 자취하던 쉐어 하우스가 여자 유학생들이 물려 받는 곳이었다. 나 이전에도 십 년 정도 여학생들이 살아서 나도 그 방 중 하나를 계약한 것이었다) 오랜 경력의 게이 웨이터가 그렇게 날파리를 떨구어 주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렇다고 시샤를 물고 연기를 뿜는 나 또한 그다지 착한 모범생은 아니었어도 왜 그렇게 앵앵거리는 어수룩한 남자가 많은 것인지......?

 이집트는 이슬람이 국교인 나라여도 값싸게 술을 마실 수도 있고 유흥과 향락이 어느 정도 보장된 곳이다. 그래서 남자는 경제력이 뒷받침되기만 하면 법적으로 네 명의 부인을 둘 수 있다. 그것도 평생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 이혼도 비교적 남자에게 유리하고 손쉬운 방법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법체제를 지니고 있었다. 이런 나라에서 세 번째나 네 번째 부인은 다른 인종으로 수집하는 것이 부의 상징인 것도 경험으로 알기는 해도 내게 왜 그런 제안을 끊임없이 하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아주 초기에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이 사는 방식을 관찰해 보니 주권 권력, 자신의 권력을 나타내는 가신=군주 형태를 부인들=남편 이라는 관계로 뚜렷하게 만들어 주는 가족 시스템이 보였다. 제한 없이 부인들을 처벌할 수 있고 각각의 부인의 노동력을 탈취하며 그들에게서 난 자녀들에 관한 권리를 징발해 성장과 교육 과정에서 여자의 권한은 집안 내에서의 양육에만 한정되었다. 그리고 주군, 왕인 자신들은 수치 혹은 창피함이 없었다. 여자들 공간인 내실에서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술주정하고 옷을 헐벗어도 그 남자를 벌하는 일이란 것 자체가 뇌세포와 사고 방식에 입력조차 되어 있지를 않았다.  규율 자체에서 벗어난 주권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여자 가족(할머니를 포함한)이 남자가 있는 외실, 응접실에서 맨발이라도 보일라 치면 그 자리에서 죽이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채찍질 당하는 15세 여자 아이를 내 눈으로 보면서 배웠다. 더군다나 그 여자들의 세계 안에서도 첫 번째 부인이 성격 강한 리더로 변모하고 그 아래 부인들이 교체되는 것을 관리 감독하며 집안을 경영해 나간다. 이는 현대에 이르러 왕=가장 이라는 '주권 권력'에서 '규율 권력'의 시스템으로 자리만 바꾸어 가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리하여 햇빛이 들지 않는 내실에서 규율의 내재화는 더욱 더 심화되어 여자들끼리 끊임없이 검열하고 자기들을 감시하고 처벌했다. 특히나 나처럼 결혼과 동시에 여권을 뻇기고 들어가 무릎 끓고 쿠란 암송부터 시작해야 하는 장식품 외국인 부인이라면 그 감시와 처벌은 극에 다다를 것이었다.  이는 왕=가장이 내리는 목숨을 좌우할 수 있는 벌과는 다른, 권력의 새로운 통치로 변모한다. 이들의 규율 권력은 가장 먼저 내 신체를 훈육하는 방식으로 집행될 것이다. 신체를 포획해 체벌하고 굶기고 아마도 골방에 구금하는 방식으로 네 번째 부인을 통제하려 할 것이었다. 여성들 스스로가 자신과 동료를, 혹은 애정의 경쟁자인 다른 부인들을 감시하고 처벌한다. 그 중 첫째 순위로 관찰 되는 것은 외모 가꾸기이다. 그들의 왕인 남편에게 선택 받기 위해  이들은 심한 다이어트와 현란한 메이크업을 하고 번쩍거리는 금붙이나 명품을 몸에 지닌다. 두 번째는 자신이 낳은 아이의 통제권을 약간이라도 얻기 위해 무조건 순종했다. 옆에서 보니 자녀가 거의 인질이다 싶었다. 세 번째는 경제권이 전혀 없었다. 다른 지역은 모르겠지만 카이로 같은 도시에서는 여자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이 가능한 직종이 거의 없었다. 여자 간호사마저도 필리핀인이나 인도네시아인 같은 외국인이 대부분이었으니. 그래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주권 권력에 헌신하고 그 아래 규율 권력의 판옵티콘을 자기들의 생활 터전 안에 쌓아갔다.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수동성의 기표를 온 몽에 장착하고서 남자가 좋아할 만한 언행과 옷차림에 피부를 하얗게 물들이고 '바람직한 무슬림 여성상'으로 계속해 만들어 나가는 이중의 권력 구조를 확인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 번은 채찍을 맞고 울었던 그 여자 아이에게 서투른 아랍어로 물어본 적이 있다.
 "너 커서 뭐 하고 싶니? 꿈이 뭐야?"
 나는 초등학교도 가기 전인 유치원 때부터 계속 대답했던 여러가지 답들이 있어서 당연히 이집트에서 여성도 할 수 있는 여학교 선생님이나 산부인과 의사 같은 꿈을 대답으로 들을 것이라고 착각했었다. 헌데 그 여자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기억한다.
 "마음이 넓고 부인을 많이 바꾸지 않는 남편과 17세에 결혼해 아들을 셋(딸은 싫단다) 낳아 기르면서 매일 아침 남편을 위한 차를 끓이고 싶다."
 학습된 주권 권력과 내재화 되어 버린 규율 권력이 그 아이의 대답을 형성해 온 것이었다. 잠시 말없이 있다가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래. 결혼하고 아들 낳고 그 후에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로 성지 순례라도 가고 싶지 않아? 다른 세상에 간다 거나 여행을 해 보고 싶지?"
라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고 기억한다.
 "아니, 알라께서 하락하지 않으실 거야. 신에게 복종하듯이 남편에게 복종하고 운명을 맡겨야 해. 그러기 위해선 책도 쿠란 이외엔 허락되지 않아. 지식의 과잉은  자만심을 불러 일으키거든."
하는 대답을 마지막으로 그 아이와 헤어졌고 외출을 허락 받지 못한 그 친구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자유롭게 홀홀단신으로 집과 가정을 떠나 비행기를 타고 와서 히잡 없이 단발 머리카락을 내놓고 거리를 걸어 다니는 동양인 여자에게 이상한 물이 들어버릴까 봐 걱정하시는 그 댁 할머님의 명령으로 말이다.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빈 손으로 나온 날이면 일부러 보란 듯이 독한 시샤를 물고 보드카도 벌컥벌컥 마시곤 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내게 말을 걸기 위해 다가오는 아랍 남자들이 의무적으로 하는 하루 다섯 번의 기도와 종파를 나누어 믿는 선지자가 다른 그들의 역사를 생각한다. 주권 권력 그리고 이양된 규율 권력의 체계를 떠올리다 보면 수박 향이 나는 연기가 피어 오르던 골목  카페에서 술 마시고 머리가 어질어질하던 시간이 기억난다. 과연 지식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앉아 있던 시간 속에 주권 권력과 규율 권력이 흘렀다는 것을 삼십년 후에나 깨닫게 되었다.  외출 금지를 당했던 그 여자 아이도 지금쯤 아들을 낳고 맛있는 차를 끓이며 사는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있겠다.
 푸코가 성찰했던 지식과 권력, 그리고 주권 권력이 어떻게 규율 권력으로 변화하여 정신 의학 분야에서 권력화 되고 성 문제에 이르렀는 지를 고고학과 계보학을 이용해 유추하게 되며 오래 전 추억을 기억하게 된 2학기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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