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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세미나 [심신탄탄 세미나 시즌1] 신체일지(1)_이미소

2024.07.12   조회수 226회    이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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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지도 어플에는 평생 다 가보지도 못할 맛집들이 빼곡히 표시되어 있고,
칼로리 폭탄 음식들을 끝임없이 먹어치우는 먹방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한다.
밥을 먹은 후엔 디저트까지 먹어야만 비로소 식사가 완료된 느낌이고,
카페에 가면 케이크를 꼭 시켜야 하며, 금세 사라지는 케이크가 아쉬워서 늘 '한 조각 말고 한 판으로 먹고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살이 찌는 것은 두려워해서 '먹으면 살찌겠지?'와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를 반복한다.
눈 앞에 있는 양념치킨을 계속 계속 먹고 싶지만 살이 찌기는 싫어서, 친구들 몰래 화장실에 가서 먹던 치킨을 뱉고 돌아온 적도 있다.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면서 배가 터질 때까지 먹은 후 밀려드는 죄책감 때문에 땀이 날 때까지 운동을 한다.
운동을 하고 나면 내 몸에 덕지덕지 붙은 지방 덩어리들이 조금은 줄어든 것 같은 기분이라 죄책감이 살짝 해소된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몸무게를 보면서 괜히 많이 먹었다며 후회하고 다짐한다. 이젠 정말 조금만 먹어야지.

나는 내가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그 음식을 '먹는 행위'에 중독된 것 같다.
음식을 입 안에 넣고 맛보고 삼키는 과정에서 나는 피하고 싶은 현실의 모든 문제들로부터 벗어난다.
케이크를 먹을 땐 달콤함에만 집중하면 되고, 떡볶이를 먹을 땐 매콤함에만 집중하면 된다.
남편이 죽었지만 지금 밥 먹는 중이라 전화를 끊겠다고 하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 엽기적이면서도 공감이 가는 것은 그 때문일까?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마따나, 음식을 먹을 때만큼은 어떠한 것도 나를 건드릴 수 없다. 스스로조차도.

나는 회피하고 있는 문제들이 아주 많다.
해결 방법을 알고 있는 명료한 문제부터, 무의식에 파묻혀 어렴풋하게 존재하는 문제까지.
내가 먹는 행위에 중독된 것은 이러한 나의 회피 성향으로부터 기인한 것은 아닐까?
내가 음식에 집착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에서의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 시기가 비슷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창의성과 독창성을 발휘하기 보다는 쉬운 것, 편한 것, 익숙한 것을 반복하며 일상의 무료함과 자기혐오를 키워나가는 요즘,
자극적인 음식을 입에 넣고 아무 생각 없이 우물거리는 행위는 너무나도 간편하고 황홀한 도피처이다.
그 순간만큼 나는 '수많은 문제를 회피하는 사람'이 아닌 '눈 앞의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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