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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일상

21세기 MZ백수, 철학사용법

2024.03.26   조회수 148회   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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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에어컨 좀 켜주시면 안 될까요? 플리즈??"

 

선생님은 안 된단다. 왜냐, 에어컨은 7월부터 켜는 것이 학교 방침이란다. 교실에 멀쩡히 달려 있는 저 에어컨은 더울 때 켜지도 못하는데 왜 달려 있는걸까? 어쨌든 지금은 안 된단다. 

그러면 7월에는 마음대로 켤 수 있나? 절대 아니다. 행정실 중앙관리시스템으로 온도와 작동시간까지 통제한다. 방침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니 무조건 따르란다. 이건 말도 안 된다! 

 

비정상인이 되었다

나는 동네에 있는 남녀 공학 중학교에 다녔다.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사립 중학교로서 1906년에 설립된 개신교 미션스쿨이다. 첫 성경 과목 시간에 주기도문을 나누어 주고 얼마 후에 시험을 쳐야 하고, 머리카락은 쇄골 밑으로 내려오면 안 되고,  NO 지각에 파마나 염색은 꿈도 못 꾼다. 교복은 깨끗하게 단정히 입고, 해리포터 넥타이와 학년을 표시하는 이름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조건 '복종'이다. 그 중학교에서의 3년은 정말 악몽이었다. 다른 친구들이야 인문계고, 특목고, 자사고에 가는 것이 목표니 버틴다지만 그저 졸업이 목표인 나는 왜 학교에서 이러고 있냐 이 말이다.

불만이 차곡차곡 쌓인 나는 반란을 꿈꾸게 되었다. 충동적으로 학교에서 탈출했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담배까지 손댔다. 선생님들은 그런 나를 감시했다. 그렇게 ‘무쓸모’ 인간으로 낙인이 찍힌 순간, 나는 더 이상 정상적인 학생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비정상이었다. 그렇게 비정상으로 분류된 후 난 '우리 중 하나'가 아닌 '남들 중 하나'가 됐다. 교칙에 순응하고 잘 따르는 아이들은 정상, 그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난 비정상이 되어 버렸다.

그 후 졸업할 때까지 나는 우리들 중 하나로, 다시 말해 정산인들 중 한 명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니,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이미 성적으로 친구들의 밑바닥을 깔아주고 있었던 나는 정상인들 사이에 끼여 고등학교에 가기 싫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자율학습'이라 불리는 '절대 안 자율학습'을 하려는 아이들도 정상은 아니라고 봤다. 나는 또 그‘놈’의 학교 방침, 교칙… 이런 것들에 쩔쩔매며 아무 말 없이 복종할 자신이 없었다. 해서 특성화고등학교로 방향을 틀었다. 교과 과정 중 특정 분야를 집중적으로 학습하는 전문 고등학교. 우리 반에서는 내가 유일했다.

이 학교는 은근히 사람 맘을 편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기대대로 자율학습은 정말 말 그대로 자율에 맡겼다. 각자 알아서 돌아가는 분위기였고 아무튼 좀 달랐다. 그때까지도 부모님은 내 성적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절대 튀지 마라. 무사히 졸업만 해다오.'가 부모님의 모토였다. 최소한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는 엄마의 바람을, 이 학교라면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이 일반 고등학교랑 다른 점은 또 있었다. 국어 과목 시간에 한 달에 한 가지씩 주제를 정해 우리끼리 토론을 진행했다. 둥글게 둘러앉아 각자의 의견을 나누었다. 나름 진지했다. 입시 준비에 몰두하는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자리 배치와 수업방식이다. 빼빼로데이가 필요한가? 학교의 교칙은 공정한가? 등 그달의 주제로 자료를 준비하고, 논제에 대해 찬성 측과 반대 측으로 나눠 수업 시간에 4:4로 토론 했다. 나도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했고 이때부터 공부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무관성, 인성을 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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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로 해석하면, 나는 오행 중 관성인 금(金)이 하나도 없다. 재성(토)에서 관성(금)으로 가는 길이 꽉 막힌 거다. '무관'이라고도 한다.

관성은 낯설고 불편한 관계를 감수하고 갈등과 충돌도 불사하며 불편한 자극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극받는 환경, 스스로 나를 극하는 조건에 기꺼이 뛰어들어 그곳에서 나와 내 삶을 찾는 과정이랄까? 하지만 나는 이런 ‘관성의 회로’가 없어서인지 학교생활이 너무 답답했다. 아무 생각 없이 책상 앞에 앉아 수업을 꾸역꾸역 듣고, 결코 끝나지 않는 시간표를 지워가며 하루 수업 일과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사주명리학에서 인성은 편인과 정인을 합쳐서 부르는 말인데 책과 연관된 학문의 의미가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보통 10년 대운을 볼 때 상반기 5년을 천간이, 나머지 5년을 지지의 운이 지배한다고 보는데 나의 경우 이 당시, 무자대운을 맞았다. 나에게 '무'는 '정재'이고 '자'는 '편인'이다. 또 세운은 1년마다 바뀌는 운인데, 2012년 임진년에 '정인'이 들어왔다. 공부에 흥미를 느꼈던 때가 바로 2012년이다. 나는 계속해서 대운 '편인'을 타고 대학까지 입학했다. 내가 대학에 가다니. 허허. 참 아리송하지만 사주 명리로는 설명이 된다.

 

푸코 선생님!

푸코는 정상과 비정상, 이성과 비이성의 경계를 '권력'과 '주체화'라는 설정 속에서 탐구했는데, 그 과정에서 공간은 언제나 중요한 사유 대상 가운데 하나였다. 내가 중학교 시절에 반란을 꿈꾼 바로 그때, 푸코라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에어컨을 켤 수 없는 그 방침이라는 것에 대해, 표준과 획일을 목표로 하는 교육과정에 대해 함께 논의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선생님은 나에게 분명 이렇게 말씀해 주실 것 같다.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푸코는 독창적인 사상가인 것 같다. 푸코가 바라본 세상은,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져서 사회로 나갔을 때 사회의 일원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설계되어 있다. 모든 개인들을 최대한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서 노동에 익숙해지도록 하고 노동 습관을 길러 주게 된다. 노동력이 있어야 자본을 축적할 수 있고 사회가 발전할 수 있으니까. 결국 자본주의라는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하여 인간과 노동력은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 그의 사상은 난해하다. 쉽지 않다. 하지만 제도에 순응하지 말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라고 푸코는 부추기는 것 같다. 나는 푸코를 통해 인간과 사물을, 어쩌면 시대의 진리까지도 다른 각도에서 조금 삐딱(!)하게 바라보는 방식을 배우고 있다.


에필로그

나는 21세기 MZ세대다. 많고 많은 MZ의 키워드 중 가장 중심은 시간이다. ‘분초사회’. 시간이 돈만큼, 혹은 돈보다 중요한 희소자원이 되며 모두가 분초를 다투며 살게 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나는 백수다. 타임리치 백수!

그래서 이 선물 같은 시간을 철학으로 완전무장 해보려 한다. 나를 속박했던 것은 어디에서 왔는지, 다르게 사유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가능한지, 철학을 무기로 나를 지킬 수 있을지. 다수의 삶과 상식을 무너뜨리고 전혀 다른 존재와 방식으로 변화에 적응해나가는, 푸코의 말을 빌리자면 '헤테로토피아'적 존재로 살아가 보려 한다. -끝-

하심당 목요 기초탄탄 스쿨 / 2024.03.24 / 3조 배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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